손흥민은 역시 손흥민이었다. 서베이 진행에 앞서 약 30명의 대학생에게 사전 취재 전화를 돌렸을 때도 응답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손흥민을 외쳤다. 심지어 영역을 스포츠로 제한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그가 소속 팀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스포츠 뉴스 하이라이트와 네이버 스포츠 뉴스 순위 상위에 랭크되는 걸 보면 그닥 놀라운 일도 아니다. 페이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한 번도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도 ‘페이커’는 알 정도로 특별한 존재다. “남자 친구가 페이커를 두고 ‘대상혁(팬들이 이상혁을 높여 부르는 표현)’이라고 할 때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말을 듣고 달라 보였어요.” 서울시립대 김혜원(22) 씨의 말이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표를 받은 손흥민과 달리 3위의 김연아는 표가 극명하게 갈렸다. 남성 응답자의 35%만 김연아를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은 것에 비해 여성 응답자 중 60.8%가 김연아를 선택했다. 비슷한 현상은 4위를 기록한 김연경도 마찬가지다. 여성 응답자 중 45.6%가 김연경을 꼽았지만 남성 응답자 중엔 20%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남자 응답자들의 표는 어디로 갔을까? 여성 응답자가 거의 꼽지 않은 안정환, 설영우, 추성훈에 표가 골고루 나뉘었는데 그중 오타니 쇼헤이의 득표수가 특히 눈에 띈다. 전체 순위에선 오타니 쇼헤이가 5위지만, 남성 응답자 중에선 3위다. 이유도 대체로 비슷했는데, ‘넘사벽 피지컬’ ‘압도적인 실력’과 같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카테고리와 달리 스포츠 분야의 특징은 인물이 달성한 업적이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대중 인지도가 높아서’나 ‘SNS에서 자주 보여서’가 인물 선정의 주된 이유인 음악, 패션, 뉴미디어와 달리, 스포츠는 ‘달성한 업적이 뛰어나서’가 선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손흥민, 페이커, 김연아를 꼽은 고려대 박세현(25) 씨는 “개인적으론 황희찬 선수를 더 좋아해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업적 면에선 손흥민 선수가 앞서죠. 페이커와 김연아 선수도 같은 맥락입니다. 업적이 따라줘야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아요”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베이 응답자들은 스포츠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고 그 까닭을 답하기에 앞서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골라주세요’라는 질문에 답했다. 스포츠는 7개 중 6위였다. 올드미디어가 7위를 한 것에 대해선 ‘그래, 요새 누가 TV랑 신문 보겠어’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만, 월드컵과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은 물론 ‘헬린이’ ‘골린이’ ‘테린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각종 운동 열풍이 불었던 최근 몇 년을 비추어볼 때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고등학생 때 스포츠에 관심이 정말 많았어요. EPL을 챙겨 보는 건 기본이고 게임도 축구 게임에 빠져 있었거든요.” 고려대 최요한(21) 씨의 말이다. 정작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근데 대학에 오고 나서 흥미를 잃었어요. 주말 저녁엔 EPL을 보는 대신 술을 마시게 됐고 평일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죠. 그리고 대학교에선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운동하기가 쉽지 않아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김지현(21) 씨의 말도 꽤 의미심장하다. “인스타그램에 ‘오운완’을 올리는 친구들이 많아요. 근데 그건 인증샷을 올리려는 목적이 더 큰 것 같아요. 스포츠보다 뉴미디어의 영향이 더 큰 셈이죠.” 그의 말을 듣자 사전 취재 전화를 돌렸을 때가 떠올랐다. 너무 많은 이름이 거론되어 보기를 추리기 어려웠던 다른 분야와 달리 스포츠는 취재원들이 말하는 이름이 ‘거기서 거기’였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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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손흥민
2위 페이커
3위 김연아
4위 김연경
5위 오타니
6위 황희찬
7위 이정후
8위 추성훈
9위 안정환
10위 설영우